'혼자 길을 나서는 건, 어디든지 나에게는 모험이라서.
언제든 덜컥 겁이 난다.
그렇다고 길을 나서지 않을 순 없다.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들과 변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에서야 비로소, 뜻하지 못한 것들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럴 때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 올해 언젠가 노트 안에 써놨던 작은 독백
노트에 저렇게 글을 쓰면서, 작지만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의 안전지대를 넘나들며 작은 모험을 해야겠다고.
혼자라는 건 항상 두렵다. 오랫동안 증조할머니, 할머니와 살아왔던 탓일까. 동생과 찰떡같이 붙어다니며 동네마실도 혼자 가지 않아왔기 때문일까. 아직도 나는 혼자하는 모든 게 낯설고 서툴다. 새로운 곳을 킁킁거리며 탐색하는 바짝 긴장한 고양이만치로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누군가 말을 걸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경계하고 뒤를 살핀다. 그건 모르는 사람의 말 한마디를 수용할 정도의 여유조차 없기 때문일 뿐, 그 사람이 싫어서는 아니다.
동시에 탐색하는 일은, 정신을 한 곳에 모으게 만드는 만큼, 집중하는 즐거움이 따른다. 새로운 자극이 주는 강렬한 통찰이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깊어지는 나의 세계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눈을 반짝거리며 조금은 매서워보이는 날카로워진 호기심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가장 맹수같이 번뜩이는 순간일 것이다. 정말이지 고양이 같은 처사이다.
그래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언젠간 여유가 생기지 않겠어. 그 누구도 오지 않아 갈매기들만 오는 바닷가에서, 경계하는 갈매기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사라질 발자국을 찍어가며 조개껍질을 만지작거리는 날이 오겠지.
온전히 혼자가 되어 숨에 집중하고, 자극에 집중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 자체로 반짝이는 것들. 반짝거리며 속삭인다. 모든 것에는 작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음을 잊지말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그 중에서도 자연속에서 살아숨쉬는 생명체들을 만날 때면 그들과 내가 뿌리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딘가 이어져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존중하는 순간의 마주침이 좋다.
그렇다고 자연 속에서만 이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시는 도시대로의 마주침과 이어짐이 있다. 익숙하고 바쁘기만 했던 공간들이 사실은 어떤 낯섦과 고요함을 품고 있는지 볼 수 있거든. 차가운 빌딩에 노을빛이 묻어나오거나 혹은 온갖 소음 속에 사색에 잠긴 이들을 발견할 때.
나와 너의 도시는 이렇게나 다르구나.
같은 서울 안에서도 우리는 각기 다른 도형을 그리는 것처럼 다른 곳을 다른 주기에 맞춰 그어간다. 각자의 구역을 돌고 돌며 선이 잠깐 만나듯 교차하긴 할테지만.
평소 가지않던 곳을 거니는 건 익숙하다고 자부했던 거대한 서울의 대동맥에서 벗어나, 모세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 다른 삶을 마주한다.
올해는 문득 혼자서 훌쩍 떠나곤 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제주에 훌쩍 떠나왔다. 일과 사람에서 벗어나 숨을 고르고 싶었다. 혼자 길을 나서고 싶었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는 변덕스러웠다. 꿈틀거리고 휙 돌아서고 해를 보기도 힘들었다. 섬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처럼 나와 이야기하는 듯 했다. 겨울의 제주는 여름보다 놀라운 에너지를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올해의 마지막에도 망설이다 혼자 길을 나선 보람이 있다.
올해가 저무는 이 끝자락에서 제주에 내려와 다시 노트에 쓰인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뜻하지 못한 순간에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내년에도 혼자 길을 나서는 여유와 힘을 가지길. 두려움에 머뭇거리더라도 종국엔 한발짝씩 디딜 수 있길.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