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에서 엘에이까지의 로드트립 포토에세이
오랜만에 찍어뒀던 사진들을 들고 포토에세이로 돌아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자동차를 구매하게 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얘기해보려고 한다.
내 생애 가장 가슴이 콩닥거리는 모험 이야기를 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톤도 표현도 가볍고 사진 위주의 포토에세이인 글이다. 독자분들도 가볍고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다.
차 위에서 캠핑이 가능하다고?
어느 날 지인분이 내게 물어봤다. "차 위에 텐트 올릴 수 있는 거 아세요?"
오프로드용 차를 사면 그 위에 텐트를 올려서 어디에서나 캠핑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아시는 분이 오프로드에 빠져있어서 계속 지인분에게도 오프로드 차를 사서 같이 캠핑 다니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차 위에 텐트라니 상상만 해도 멋졌다. 어디든지 발길이 닿는대로, 설령 길이 없어도 갈 수 있는 차.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차만 세울 공간이 있다면 머무를 수 있는 차 위의 텐트. 뭐야, 캠핑카만큼 멋지면서 실용적인데?
대표적인 오프로드용 차에는 도요타의 포러너(4runner), 그리고 지프의 랭글러(Wrangler) 등이 있다.
나는 그 때부터 차들 위에 텐트가 올라간 사진들과 그 사진속의 오프로드 차들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나와 스탠 마음에 꼭 드는 사진을 발견했다. 바로 도요타의 FJ크루저(FJ Cruiser)였다!
저 귀여운 문 2개짜리 오프로드 차에 우리 둘이 있는 상상은 정말이지 즐거웠다. 미국 전역으로 캠핑 다니면 얼마나 즐거울까. 저 귀여운 차에서 캠핑을 하고 머무르는 상상은 더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프로드 얘기를 꺼낸 1주일만에 FJ크루저 판매글을 매일매일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포틀랜드에 중고 FJ크루저 매매글이 올라왔다. 연식과 키로수가 적정하고 가격이 시장가보다 훨씬 낮은 엄청 좋은 딜이 올라온 것. 때마침 우리는 맥주 한잔을 들이킨 후였고, 나는 갑자기 내 차가 너무나 가지고 싶어졌다. 연달은 논의 끝에 나와 스탠은 말했다. 그래, 좋아. 사러 가자!
그렇게 우리는 포틀랜드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끊고, 급하게 휴가를 이틀 내었다. 만약 차를 사지 못하면 그것대로 즉흥적인 포틀랜드 여행이 될 것이고 또 차를 산다면 내 첫 차가 생기는 셈이었다. 포틀랜드에서 어바인까지 장장 15 시간이 넘는 로드트립을, 내 차로 이틀안에 하게 되는 것도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탠과 나는 좋은 딜이 있으면 뉴욕이나 동부에서라도 픽업해서 로드트립으로 돌아오자고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이리 빨리 올 줄은 몰랐어. 물론 포틀랜드가 있는 오레건주와 캘리포니아주는 그리 멀진 않지만!
포틀랜드 도착, 우선 밥부터 먹자
포틀랜드에는 나와 스탠이 좋아하는 비스켓 샌드위치집이 있다. 사실 스탠은 이 비스켓 샌드위치집 때문에 더 신나있었던 지도 모른다. 그는 차를 구매하지 않으면 다시 시내로 돌아와 내일 아침에도 점심에도 이 비스켓 샌드위치를 먹을거라고, 차를 구매하지 않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느긋하고도 신난 톤으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근교 중고차 딜러쉽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나와 스탠은 무엇을 살펴봐야 할지, 가격을 어떻게 네고할 수 있을지, 어떨 때 구매하지 않고 또 어떨 때 구매해야 할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기분좋은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가 딜러쉽에 도착하자마자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와 한 5-10분차를 두고,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이 모두 이 차를 구매하기 위해 딜러쉽에 도착한 것이다. 다들 좋은 딜이라는 것을 알고 최대한 빠르게 온 게 분명하다.
FJ 크루저는 미국 시장에서 2014년부터 단종된 모델이다. 하지만 시장 포지셔닝 상 FJ크루저를 대체할 만한 모델이 없어, 현재 미국시장에서 이 모델은 기존가격보다 훨씬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희한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감가상각이 엄청나게 빠른 자동차 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차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차 모델인 셈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빈티지한 생김새와, 2인을 위한 작은 차 모양새, 지프(Jeep)보다 잔고장이 덜 나고 승차감은 더 편하기 때문. 지프 2인승처럼 작은 오프로드용 차를 갖고 싶지만, 지프의 유지비용이 문제였던 사람에게는 가격이 좀 비싸다하더라도 FJ크루저가 딱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먼저 시승과 러브콜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극적으로 네고할 틈도 없이 차를 구매하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천만원이 넘는 소비를 이렇게 충동적으로 해보다니, 합리적이진 않았지만 기분만큼은 짜릿했다. 아직도 떠올리면 두근거리는 기억이다.
이제 내려가자, 캘리포니아로
우리는 차를 사고 바로 여정에 나섰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우리는 최대한 내려갈 수 있는 만큼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총 15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잠깐 밥을 먹거나 기름을 넣고 쉬는 걸 고려하면 18시간이 소요된다고 보고 최소한 2-3시간은 이날밤에 운전을 해서 내려가는 게 그 다음날이 편할 듯했다.
내려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겹겹이 쌓여있는 산들과 나무들, 언덕들을 넘을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 내년에는 포틀랜드로 이 차를 끌고 꼭 캠핑을 오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작년에도 친한 친구가 미국에 놀러와 포틀랜드 근처 크레이터레이크로 캠핑을 갔다오기도 했다. 하루밖에 안되는 일정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내년에는 길게 한 일주일 오레곤 곳곳을 돌아다녀야지.
그 다음날, 5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는 길
우리는 로즈버그의 싸구려 모텔을 예약해 잠을 청한 후, 그 다음날 남은 13시간의 길을 내려가기로 했다. 아침일찍 모텔의 값싼 토스트와 오렌지주스를 조금 먹고는 커피를 사다가 운전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은 희망차진 않았지만 따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FJ 크루저의 아날로그식 나침반 색깔인 주황색 불빛과 잘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캘리포니아로 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Shasta 산이 보였다. 산 정상 옆을 지나가는 그 10분내지의 구간이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세크라멘토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곧 우리는 가장 지루하다고 불리는 구간에 진입했다. 일자로 쭈욱 이어지는, 주로 엘에이와 샌프란시스코를 왔다갔다 할 때 지나가야 하는 길. 곡선이 없이 몇 시간을 평평한 대지를 지나가는 길이다.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악명과는 다르게도, 나는 항상 평화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넓은 초원과 종종 보이는 소떼들, 오렌지나무 밭, 또 밭들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용맹해보이는 붉은꼬리 매를 보는 게 좋았다.
사설: 붉은꼬리매의 영어 이름은 Red-tail Hawk이다. 글을 쓰다가, 붉은꼬리매가 한글 정식명칭인가 갸우뚱하여 검색해보았더니 붉은꼬리매라고도 하고 말똥가리라고 한단다. 귀엽기 그지 없는 이름이잖아? 용맹해보이는 생김새와 상반되는 이름이라니. 이 붉은꼬리매의 울음소리는 용맹하고 우렁차서, 영화에서 독수리 등의 울음소리로 사용된다. 실제 독수리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졸렬(?)해서 독수리 울음소리에 사용하기는 좀 애매하거든. 이 작은 맹금류에게서 우리가 아는 독수리 울음소리가 나온다니, 매력 가득한 새임에는 틀림없다.
밤 11시가 넘어 드디어 다시 어바인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스탠과 나는 우리가 이 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후회하면 어쩌지, 혹은 가격이 싼 게 걸리는데 무슨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온갖 걱정되는 부분들을 얘기했다. 하지만 어딘가 우리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 충동적인 구매와 여행이 주는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매일매일 차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첫 차라는 건 이런걸까? 근처 오프로드 여행도 가고 캠핑도 가고, 또 오래된 부품들을 하나하나 바꾸고 커스터마이즈하는 게 참 즐겁다.
스탠은 차를 사기 전, 이 차를 산다면 이 차를 고쳐나가는 게 그의 이번해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에 걸쳐서 이 차를 보수해나가는 게 그의 인생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 차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까 고민한다.
우리 가족 첫 차는 기아 스포티지였다. FJ크루저를 타면 마치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여름이면 가족여행으로 짐을 싸서 국내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던, 이리저리 흔들리고 좀 불편해도 차와 함께 숨쉬는 기분이 들던 그 때가.
여러 모로, 이 차는 당분간 우리 여행의 즐거운 동행이 될테다. 잘 부탁해, 나의 첫 차 FJ크루저! 곧 캠핑 후기들도 들고 돌아올 수 있도록 캠핑 열심히 다녀야지.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