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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텍스쳐

banana-adventure 2024. 7. 2. 16:30

포토 에세이 - 제주의 질감 기록하기

 

가끔씩 제주에 내려갈 때마다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나의 제주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고향이란 뭘까 자주 생각하는 요즘, 제주는 내게 평온함을 고스란히 안겨준다는 의미에서 고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주의 무는 제주를 꼭 닮았다. 단단하고 거칠며 따스하고 평온한 곳, 제주. 

무 밭 사진 좀 찍을 걸. 비트 사진밖에 없어서 아쉽다-
 
새벽과 오후의 빛이 비슷한 온도차를 갖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은 제주밖엔 모르겠다

 

동시에 또 적막한 고요함이 감돌기도 한다, 특히 겨울에는.
새들이 퍼득이는 소리와 소복소복 눈 맺히는 소리만 저멀리서 들리는 듯 하다.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은 공간 속에서 공기마저도 얼어붙어 있다. 

또 어떤 것들은 시간의 틈이 만들어낸 질감으로 제주의 윗동네를 덮어낸다.

 
제주의 텍스쳐 글을 쓰기로 마음먹게 만든 순간

요상하게도, 제주의 적막함은 포근하다. 무겁고, 또 더러는 무서운데도 온기가 감돈달까.

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한다면 그 어느 추운 날에도 눈이 다 녹아버린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자, 이제 내려가자

 

한라산을 넘을 때면 항상 눈비가 올테지만,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휙 돌려 쨍-해진다. 

제주 주변 섬들의 날씨는 더 뒤죽박죽일 때도 있다. 가파도 잘못 들어가면 일주일씩 못나오기도 한다고.

그래서 섬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고 하나? 아니, 변죽이라 치부하기에는 생동감이 차고 넘친달까.

거대한 힘을 품고는 아직 잠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 같다고 느꼈다. 

 
사진을 찍은 후 이내 곧 다시 비바람이 몰아쳤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은 제주의 가장 밑자락 흙바닥에서 항상 겨울잠을 자나보다.

태풍이 몰아쳐 쩔은 바다냄새가 진동할 적에도, 제주는 태동하는 것들로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모습 중 하나는 먹구름이 가득한 바다다. 

'나는 너희 도시것들의 휴양지가 아니라 거친 뱃사람들의 고향이다' 하고 아집이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내 곧 또 잠잠해지겠지만.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주의 순간은 해질녁 이후가 아닐런지. 

해질녁도 좋다. 모든 것이 옅은 노을색을 머금고, 또 모두가 한 템포 여유로워지는 그 순간 - 

돗자리와 우산 하나면 충분한 제주의 로맨스
 
꼭 이런 색이 노을색이지.

노을색이란 하늘과 태양, 그리고 대지를 가로지르는 그 스펙트럼과 시간차에 따른 모든 변화까지도 포함하는 꼭 마법 같은 단어인 게 분명하다. 해질녁에는 모든 것들이 더 사랑스럽고 깊어진다. 

 

해가 거진 다 사라지고 나면, 잔상처럼 보랏빛이 남아 제주의 까만 현무암을 덮어내는데 -

 

 

난 그게 그렇게 좋더라.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annabanana/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