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박사 안해도 전공 살려서 취업할 수 있어요!
고3 때였다. 수시로 어떤 학과에 지원해볼까 고민하던차였다. 나는 돈을 풍족할 정도로 많이 벌고 싶었다. 사업을 하고 싶을 정도로 야망찬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월급쟁이로도 돈을 꽤나 버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득, 아버지가 인류학과는 어떠냐고 추천했다.
아니, 나보고 제인 구달이 되라는 거야? 싫어!
사고의 세계가 좁았던 나에게 인류학을 떠올리게 해주는 주제는 '제인 구달' 뿐이었다.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류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대학교 3-4학년이 되어 비슷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인류학 배운 걸로 취업 어떻게 하지?
인류학자 될 거 아니면 공부 왜 했지? 석사 박사 아니면 노답 아닌가? 하는 생각. 저멀리 동남아시아 혹은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해 배웠다가 또 한국 농촌에 내려가서 필드 조사를 하다보면 여러 작은 필드들을 조사했던 모든 과정이 전문성이 없는 학문처럼 느껴지곤 한다. "분명 배운 건 많은 것 같은데..."라고 되뇌이면서.
나 역시도 그랬다. 취업할 때가 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과에는 정형화된 커리어 패스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대부분 인류학과라고 하면 뭘 배우는 학문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먼저 인류학이 뭔지부터 설명하다가 면접장을 나오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게 고민하고 더 넓게 상상할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인류학도로서의 장점과 전문성을 언어화시키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나는 학문적 세계를 넘어선 세계에서도 인류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취업 이후, 나는 현업에서도 인류학에서 배웠던 가치와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다.
현재 나는 기술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마케터 4년차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친구들은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사회적 기업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로, 혹은 교육 스타트업에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주제들 - 인류학에서 배운 것들이 취업에서 어떤 강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현 업무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 에 대해 이야기해볼 것이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 그리고 실질적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Credit: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여성 학생들을 위해 '걸스커리어밋업'이라는 프로젝트로 정치, 식품사업, 기획, 코스메틱 업계 등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인류학졸업생 20대 중후반 여성들의 강연 행사가 있었다. 나도 알음알음 초대가 되어 강연을 했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최근에는 모교에서 유사하게 '커리어밋업'행사를 기획하여 위에 언급한 3명과 함께 강연을 했다. 이 글은 최근 그 행사의 강연을 정리하며 쓰는 글이기도 하다. 나비의 날갯짓 같이 밝은 영향을 전해준 '걸스커리어밋업' 기획자분께, 모교에서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신 교수님들께, 그리고 열심히 커리어와 인류학을 연결지어 구체적으로 커리어의 상상력을 넓혀주는 강연을 해준 동료여성 선후배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비지니스 세계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쓴다
조금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자면, 취준생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미국에서 일하기였다. 그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가서 사귄 애인과 또 그가 살고 있는 햇빛 넘치는 캘리포니아가 그리웠다. 어떻게든 캘리포니아에 돌아갈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언젠가는 미국에서 일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나는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는 외국계 기업이라면 몽땅 다! 무작정 서류를 넣기 시작했다.
넣다보니 알게 된 사실 -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고 한국법인이 있는 외국계 회사는 대부분 컨설팅 회사이다. 그리고 컨설팅 회사들은 이들에게 먹힐만한 전형적인 이력서 유형과 인터뷰 유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그들의 서류 문턱을 통과해 여차저차 인터뷰에 가면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다른 면접자들은 SWOT분석, 포지셔닝, ROI와 같은 외계어를 쏟아가며 이야기하건만, 나는 나의 강점을 뽐내긴커녕 면접자의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도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회사에서 떨어져버렸다.
그렇다. 그들의 언어는 외계어 같았다. 비지니스 세계는 나와는 다른 언어를 쓰더라. 마치 같은 알파벳을 쓰기 때문에 보기에는 친숙하지만 서로 말해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스페인어와 영어처럼. 나는 이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그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차근차근 뜻을 설명해줄 통역사는 없었다.
쉽게 좌절하지는 말자. 비단 비지니스 업계만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테크 업계도 그러하다. 제약 업계도 그러할 것이고, 또 패션업계도 그러할 것이다. 다른 어떤 업계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경영을 배웠다고 모든 업계의 상황을 이해하고 언어를 아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업계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굳혔든지 간에, 언어는 배우면 된다.
두려울 땐, 이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100세까지 사는데, 우리가 소위 믿는 '전문성'은 겨우 4년 배운 학부시절에 나온다. 무슨 말이냐면, 학부수준의 전문성이라는 게 생각하는 것만큼 어마어마하게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문과 이과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도, 업계에서 일하며 학부를 넘어서서 다양한 전문성을 쌓아올릴 수 있다.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그 근처에서 알짱(?)거리도록 하자.
오히려 다양한 업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새로운 세계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는 인류학 방법론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원래부터 인류학자는 새로운 필드로 모험을 떠나 그 필드를 외부에서 더 깊이있게 파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드의 외부자이자, 참여관찰자로서 인류학자는 평생 그 필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몸 깊숙히 이해하여 보이지 않는 문화와 관습을 끄집어내 언어화하고 분석하여 그 필드 바깥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취업을 원하는 분야가 어디든지 간에, 우선 인류학에서와는 언어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라. 나아가 그 분야를 현지조사의 필드라고 생각해보자. 현지조사를 하듯이 그 필드를 조사한다면, 빠르게 그 세계의 언어를 파악하고 또 그들과는 다르게 읽어내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테크/스타트업계가 사용하는 영어 표현'을 따로 정리해서 노트에 적어놓는다. 실리콘밸리 업계의 톤앤매너를 익히기 위해서다. 또 기술 관련 글을 쓸 때는, 개발자들을 인터뷰하고, 개발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단어들을 적절히 글에 섞어서 써내는 식으로 글의 전문성을 높인다.
+ 인류학적 관점을 비지니스 언어로 바꾸기
나는 경영학에 관심이 있었기에 경영학 수업을 필드처럼 조사했었다. 그리고 비지니스 세계에서 인류학적인 방법론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들이 쓰는 언어로 바꾸어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나갔다. 혹여라도 인터뷰에서 경영과 관련해서는 말문이 턱 막히는 인류학도라면 밑에 표를 참고하길 바란다. 인류학에서 배운 방법론을 쉽게 경영학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언어 바꾸기'가 될 것이다.
만약 테크 업계, 스타트업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개발자 중심의 문화와 업무처리 방식에 대한 글들을 많이 읽어보길 바란다. 정보 공유의 투명성을 중시하는 업계 특성상, 쉽고 유익한 글들이 무료로 많이 배포되어 있다. 브런치, 미디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양한 글들을 읽어보자. 신입포지션이라면 인터뷰에서 업무처리방식(스프린트, KPI, 빠른 iteration)이나 사용하는 협업 툴(google/facebook ads, 슬렉, 트렐로, 지라 등)만 슬쩍 언급해도 업무이해도 및 관심도가 높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전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인류학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나열하며 취업과 연관지으려고 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있다면, 그건 '전문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인류학도 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에서 모두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문송한' 우리들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학부수준에 석박사들처럼 필드라는 게 있을리는 없다. 교수님들을 보아하니 '이주 여성 및 성과 문화'이라던가 '빈곤 및 부의 재분배,' '동남아 난민연구' 등의 전문성이 있는데- 그 분들 밑에서 수업을 듣다보니 내가 들은 수업들은 중구난방처럼 보인다. 이 수업들을 서로 어떻게 연결해보려고 해도 하나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자소서 쓰고 참 고민 많이 했었다.
필자가 들었던 문화인류학 수업:
일본문화연구, 역사인류학, 빈곤의 인류학, 영상인류학, 종교와 의식, 가족과 문화, 세계화와 다문화주의, 현대사회의 정체성, 지구촌시대의 문화인류학, 문화기술지, 현지조사방법론, 현대문화인류학이론
나는 교수님들처럼 일본이나 중국, 베트남 같은 한 지역의 연구자도 아니고, 또 영상이나 가족, 종교, 정체성과 같은 어떤 개념에서 파생된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저 일개 '잡학다식'한 별 전문성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때의 좌절감이란.
다시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어떤 기술을 가지게 된걸까? 다른 필드, 다른 주제를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4학년 때에 1학년 때보다 수업 이해도가 높아진 걸까?
그제서야 나는 그전까지 생각했던 '전문성'이 지식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면, '일본'이라는 지역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는 것, 혹은 '파이썬'이라는 코딩 언어를 쓸 줄 아는 것, '공학실험'에서 배운 수식을 이해하는 것 등. 한 분야에서 축적되고 쓰이는, 그리고 그 분야를 넘어서는 쓰이지 못하는 종류의 지식을 통칭하는 것이다.
인류학에서에서 배우는 전문성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사고확장의 방법론을 배운다. 그리고 이 방법론은 분야를 넘나들며 사용할 수 있는 '이전가능한 기술(transferable skill)'이다.
구글에서 본 '이전가능한 기술'의 정의: Transferable skills, also known as “portable skills,” are qualities that can be transferred from one job to another.
사고확장의 방법론이란 무엇인지 뜯어다보도록 하자. 인류학에서는 낯선 필드를 새롭게 바라보고 조사하고 분석해내는 종합적인 통찰력을 기른다. 다시 말하면, 인류학은 다른 분야에서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분석틀을 가리지 않고 활용하며, 필드를 가장 잘 분석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필드분석을 가감없이 종합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방식이 생물학에서 쓰이는 개념이든, 통계적 방법론이든, 혹은 스토리텔링이나 상징적 의미 분석이든 딱히 상관은 없다. 그저 필드를 종합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조사하고 이해하고 또 전달하면 된다. 인류학처럼 holistic한 한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학문이 있을까.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에서 자주 쓰이는 black box 개념(인풋과 아웃풋이 일정하게 나오지만 그 안에서 어떤 논리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뜻. 주로 머신러닝/딥러닝 레이어를 설명할 때 쓰이곤 한다.)도 심심치않게 인류학 강의 시간에 들을 수 있다. 비정상이 무엇인가를 토론할 때면 생물학 책 '자연의 농담'을 핵심 교재로 사용하며 돌연변이가 생기는 과정이나 간성 등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다. 조사방식에 열려있는 만큼 조사 주제에도 열려있다. 인류학에서는 인터넷 중심의 커뮤니티 - 팬 덕질, 일베, 메갈, 오픈카톡 - 등의 새롭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연구에도 열려있다.
쉽게 말하면, 인류학은 필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단서를 긁어모은 뒤, 단서들을 이어나가며 분석과 이해 수준을 계속해서 높여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모든 낯선 사회 현상에 열려있는 자세로 접근할 수 있도록 확장된 사고력이 인류학의 가장 강력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능력은 초연결 시대에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서로 전혀 다른 분야를 연결해내고, 또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분석/해결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문화인류학에서 배우는 이전가능한 기술은 다양하고 강력하다. 팀워크를 비롯하여, 심층 인터뷰, 현지조사 등의 인간관계 속에서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기를 수 있다. 다양한 분야를 조사하면서 빠른 실행력도 키울 수 있다. 리서치 스킬과 논리적 설득력 역시 뒤따라 올 것이다. 당연히, 다양성 및 문화에 대한 이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문화인류학과 친구들을 보면 스타트업과 핏이 잘 맞는 것 같다. 또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통적인 커리어 패스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인류학과의 특성상, 오히려 더 자신과 잘맞는 분야를 개척해나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패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P.S. 교수님께서 슬쩍 해주신 말로는, 다른 과에 비해 우리 과가 취업률이나 학과 만족도 결과가 훨씬 높다고...!
이 글이 나이브하거나 혹은 현실감없이 희망차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믿고 있다.
어떤 직업이든, 그 업계의 세계를 새로운 필드로 보고 조사, 분석한다면 인류학도는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다고.
낯선 세계로 다이빙하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인류학을 배워왔던 과정은 모르는 세계로 더 쉽게 다이빙하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전지대에서 발을 떼고 다른 필드에 살짝 발가락을 적셔보는 것. 이를 발판삼아 그 필드에 완전히 몸을 담구고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해가며 또 다음 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꼰대 용어로는 도전적이어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자소서 용어로는 실행력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경험이 내 삶에서 단단한 뿌리로 작용하여 중요한 선택과 결심을 가능하게 해줬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학부시절에는 전혀 관심 없었던 시화호 마을에 가서 간척 사업에 관해 조사하느라 시골에 내려가 생전 처음으로 모르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을 어물쩡 걸어보았다. 환심을 사겠다고 농삿일도 도왔더란다. 또 연남동 젠트리피케이션을 조사할 때는 길치인 주제에 연남동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새로 생긴 가게가 어떤 가게인지 지도에 표시하느라고 여름볕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걸어다니다 원치않는 같은 장소로 몇번이나 헤메이며 돌아오기도 했다. 종국에는 이 맨땅에 헤딩 같았던 경험들이 심도 깊은 연구 필드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다이빙이 쉬워졌다. 나는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에 직장을 갖겠다는 일념하나로 미국본사를 둔 한국 회사들에 지원했다. (다시 말하지만, 미친 짓 같다는 생각을 요새도 종종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지금 다니는 테크 스타트업이었다. 회사의 얼굴 인식 기술이 재밌어보여 기술 개발 글을 쓰는 일도 해보았다. 개발자도 아닌 사람이 테크 글을, 그것도 영어로 쓴다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우선 해보자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이후에도, 기회만 된다면 영상 작업이나 홈페이지 기획 등 나의 스킬셋과 맞지 않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럴수록 내가 좋아하는 일, 혹은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커리어적으로 한층 성장했음을, 깊어졌음을 느낀다.
지금은 다니는 회사의 미국 오피스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이민도 준비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게, 이렇게 이것저것 해보다보면 우연히도 재밌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우연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아 맞다- 궁금한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교환학생 때 만난 애인도 아직 잘 만나고 있다. 넷플릭스쇼와 핑 높은 게임들로, 4년의 장거리 동안에도 매주 함께 하는 토요일 반나절을 만들어준 그에게 항상 감사하다.
소위 말하는 이과 출신도 혹은 유학생 출신도 아닌 내가 이 모든 '잘 못할 것 같은' 일에 뛰어들 수 있었던 힘은 모두 인류학 공부에서 뛰어드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실패와 작은 성취를 겪으며 성장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을 해왔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업무에 끊임없이 다이빙한다. 그리고 인류학을 공부하는 혹은 했던 사람들 모두 그러길 바란다. 인생의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에서, 다양하고 무궁한 가능성으로 다이빙할 수 있도록. 적어도, 다이빙하지 않는 이유가 이유없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길. 또 새로운 가능성을 몸소 겪으며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일과 환경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길.
글을 마치며.
마치막으로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페이스북의 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Careers are a jungle gym, not a ladder." 미국 통계에 따르면 사람은 삶에서 평균적으로 10번에서 15번 직업을 바꾼다고 한다. 셰릴 샌드버그의 말처럼, 지금 세대의 커리어는 좌우양옆으로 이동해가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바뀔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직함이 아닌, 일과 포트폴리오가 중요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대리-팀장-과장'에서 벗어나서 확장해나가는 커리어를 설계해보자. '디자이너-기획자-개발자'라던지, '포토그래퍼-스쿠버 다이버-수중 포토그래퍼'라던지. 치킨집 사장과 카페 주인만을 커리어 맨 끝에 두기엔 우리의 삶은 더 다이나믹하다.
인류학도를 비롯한 문송한 친구들이 행시와 로스쿨을 넘어서는 커리어적 상상력을 가졌으면 해서 쓰기 시작한 이 글을 마친다. 이 글에서, 작게는 면접관에게 자신을 힘있게 설명할 언어를, 크게는 삶이라는 큰 바다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다이빙할 원동력을 가져갔으면 한다. 어,, 그래서 음... 화이팅...!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