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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banana-adventure 2024. 6. 2. 06:07

수많은 여행을 관통하여 나를 매료시키는 힘

여행의 의미를 온연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많은 이들의 여행이 각각 다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들을 모아놓는다면, 그 중에서 먼지 한 톨만큼도 차지하지 않을 나의 여행들 역시 다 달랐다. 목적도, 준비도, 사람도 달랐다. 하나도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매번 색다름에 이끌리곤 했으니. 

 

어딘가 닮아있었다. 어디서나 닮아있었다.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난 다른 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향수를 느꼈다. 그리움이 섞인 부러움의 탄식을 내뱉었고 그들과 함께 웃고 감동을 나눴다.

 

전혀 다르지만 닮아있던 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모든 이들의 여정에 있는, 우리를 매료하는 그 아름다움에 관해. 

 

 

엘 니도(El Nido)에서의 일화

 

필리핀에 있는 팔라완 섬에 머물렀을 적에, '엘 니도'라는 섬 북쪽에서 2주간의 시간을 보냈을 때의 얘기다. 가는 길부터 험난한 여정이었다. 마닐라까지 가서 환승하여 팔라완 섬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타고 근처 시내에서 하루 묵은 뒤, 그 다음 날 아침 6시부터 버스를 타고 6시간동안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섞인 길을 달려갔다. 여러 마을과 밭, 노니는 소들을 지나 굽이굽이 멀미를 참으며 엘 니도에 도착했다.

 

그 날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간 바닷가에서 봤던 첫번째 노을, 그 순간을 기억한다. 

 

 

바다 한가운데서 계속해서 물이 차는 대여 고글을 끼고 소금물을 마셔가며 코 끝이 찡해지던 순간도 기억한다. 처음으로 색색의 산호들과 열대어들에 둘러싸여 헤엄치고 다녔다. 그리고 또 몇 시간이나 바닷속을 헤메며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들뜬 기분에 사로잡혔던 스쿠버 다이빙도 생생히 기억한다. 라푸라푸라는 물고기, 트럼펫피쉬, 우리를 따라다니던 엔젤 피쉬, 문어, 장어, 초콜렛칩 불가사리, 그리고 자신의 몇백배가 넘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협하던 어른 니모와 말미잘 속 애기 니모들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물 위로 올라가기 바로 직전, 우연히 마주친 바다 거북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름도 영롱한 푸른바다거북! (Green Sea Turtle)

내 어깨를 툭툭 친 가이드 스쿠버의 손 끝은 살짝 윗쪽을 향해 있었고 그 위로는 내리쬐는 햇살이 내려와 장엄한 장막과 같은 빛이 바다를 가로질러 투명한 에메랄드 빛에서부터 짙은 남색까지의 레이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바로 중간에 여유롭게 헤엄치는 푸른바다거북을 만났다. 그 손짓 하나하나를 잊지 못한다. 잠시나마 거북을 제외하고는 시간, 공간, 내 숨까지도 멎은 것만 같았던 순간이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들  Breathtaking moments 

 

알프스를 넘어가던 기차 안에서 눈이 쌓인 산 꼭대기와 초록 잔디밭, 빨갛고 노란 꽃들, 에메랄드 강물과 함께 있는 작은 통나무집을 봤을 때가 그랬다. 니스에서 우연히 계속 마주치던 러시아 친구들 둘과 새벽까지 바닷가에서 로제 와인과 밀카 오레오 초코렛, 브리 치즈를 먹으며 한 없이 이야기하던 순간, 또 돌아가는 길에 벤츠 택시를 타고 아무도 없는 언덕길을 롤러코스터처럼 내려가며 모두가 소리를 지르던 때가 그랬다. 

 

미국에 있을 때, 조슈아 트리 캠핑장을 향해 달려가던 차 안에서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를 들으며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본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져 있을 때가 그랬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 주, 늦은 저녁 샌디에고의 한 동네에서 집들 전체가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으로 빛나고 있는 길을 걷다가 남자친구가 불빛을 등지고 서서 "You rock my world" 라고 말하며 내 눈을 응시할 때가 그랬다. 

 

제주도에 혼자 여행 가 태풍 너구리가 덮친 월정리 해변을 걸으며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파도가 내리칠 때도 그랬다. 그리고 곧, 우연치 않게 그 마을에 갇혔는데 마을 교회에 우리 학과 교수님이 와서 강연을 하신다길래 들렀다가 펑펑 울었을 때 역시 그랬다. 

 

심장이 멎을 것 같다는 표현이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그 순간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게 아닐까? 그 기분좋은 쿵 하는 통증과 숨을 깊게 들이내쉬게 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나는 한시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낯선 나와의 조우 

 

그리고 곧 그 순간은 나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여긴 어디지? 라는 물음. 이 물음은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여행과 함께 찾아온 숨 멎는 순간들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나 자신조차 낯설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대화를 시작하기도 하고 입 밖에 꺼내보지 않았던 부끄러웠던 과거와 감정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는 '나' 말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형태가 전세계 곳곳의 이야기에 퍼져있는 것 역시 많은 이들이 낯선 나를 만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싫은 소리도 잘 하고, 도전도 잘하는 이 '낯선 나'는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에 묶여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거의 모든 것이 끊겨 있는 이 낯선 세상 속에서 나의 원래의 위치, 즉 나의 일상을 바라보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중요하지 않아진 것들을 잘라내는 힘이 차오른 것을 느낀다. 

 

 

나를 안고 있는 우주

 

안드로메다로 와 버려서 혼란스러운 독자들에게 미안함을 조금 느낀다. 하지만 우주 안에서의 나를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의 감동을 반의 반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낯설대로 낯설어지건만, 그렇다고 낯선 곳이 계속 낯설기만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곳곳에서 어딘가 닮아 있는 구석을 찾아내곤 한다. 말도 안 통하는데도 계속해서 먹을 것을 내어다주며 며칠 사이에 단골 취급을 해주는 그리스 섬 마을 이탈리아 식당 주인집 아들은 우리 동네 삼겹살집 아들내미와 닮아 있다. 전통 가락에 맞춰 취한 채로 춤을 추던 아주머니 아저씨가 계시던 동네 바는 일학년 때 농활을 갔던 동네의 마을회관 같기도 하다.

 

낯설지만 동시에 닮아 있는 풍경들. 프렉탈 같이 작고 거대한, 찰나들. 나는 그 속에서 우주의 모든 것이 다르고, 닮았고,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곧 내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우주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를 우주 안에서 위치시켜 보자. 작고 푸른 점 위에 더 먼지 같은 곳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그 먼지 같은 곳들 겨우 몇 군데를 파편적으로 다녀온 내가, 그 곳에서 숨이 멎는 것과 같은 어마무시한 경외감을 느낀다. 어떤 것이 이 경외감보다도 정확히, 우주 속에서 내가 얼마나 먼지같은 존재라는 것을 반증할 수 있을까. 

 


 

이게 아마도 내가 모든 세상의 다른 이들의 여행에서 느끼는 향수의 정체일 것이다. 

 

여행이 나를, 우리를 매료하는 아름다움 역시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순간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정길에서 크고 작은 여행을 하며 그 순간을 느낄 나와 모두에게 그리움이 섞인 작은 부러움의 탄식을 보낸다.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 브런치에서의 댓글을 그대로 옮겨 올 수 없어 아쉬운 마음에 브런치 글 링크를 남겨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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