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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보러 가는 길

banana-adventure 2024. 6. 22. 06:30

조슈아 트리에서 은하수 찍으러 떠난 로드 트립 포토 에세이

 

무심코 밤 하늘을 올려다봤었다. 리버사이드의 쌀쌀한 밤 하늘엔 오리온자리, 북두칠성,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울 토박이라 별을 많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새로운 발견을 같이 있던 남자친구에게 들떠서 말했다. 그는 나의 작은 발견을 웃어 넘겼다. 이렇게 조금 보이는 별에 흥분한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그는 우리가 캠핑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했다. 은하수를 볼 수 있다나. 그 땐 정말 거짓말인줄 알았지. 그리고 우리는 가자마자 은하수가 쏟아질 것만 같은 하늘을 마주했다.

 

스탠이 자신이 찍었다고 보여준 사진. 미안, 처음엔 뻥인줄 알았어.

그렇게 리버사이드보다도 더 깊은 사막이자, 더 많은 별이 떠오르는 조슈아트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쩌다보니 미국과 한국을 일년에도 세네번은 왔다갔다 하고 있다. 미국에 갈 때마다 손꼽아 가기를 고대하는 곳이 바로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 연애 초반 처음 보았던 그 때의 은하수를 보러, 나와 스탠은 항상 로드 트립을 떠난다.

 

사막과 별, 쨍한 더위와 쌀쌀한 밤, 핫도그와 스모어를 구워먹는 우리의 캠핑은 어느새 우리 둘의 작은 의식이자 전통이 되었다. 여우가 어린왕자를 기다리듯이.

가는 길 그 도로에서

캠핑갈 준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캠핑 텐트, 가그린, 화장 지울 티슈면 충분하다. 잊지 않고 카메라도 한켠에 챙겼다.

운전석을 넘어서 포착한 버스 정류장과 남녀
가는 길 중간엔 항상  리버사이드가 있다

가는 길 내내 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않아도 계속 웃음이 나던 것만은 또렷하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메뉴를 진지하게 의논했던가?

스탠: "저번처럼 핫도그를 만들거지?"
제나: "응, 이번엔 야심차게 치즈도 구워볼까?"
스탠: "니가 원한다면 뭐든지 좋아."

그렇게 기억도 나지 않을 대화와 노래들이 뎁혀놓은 따스한 공기가 맴돌았다. 너와 나의 관계는, 특별한 로맨틱함보다도, 그 따스한 공기를 꾹꾹 눌러담은 그 위에 발을 딛고 있음이 분명하고 느꼈다.

AHEAD.

가는 길은 대부분 아무 특별할 것 없는 내륙사막이지만, 너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은 오히려 특별할 것 없어 기대가 된다. 쭉 뻗어 그 앞길이 훤히 보이는 뻔한 길일지 몰라도, 그게 너의 뻔한 장난과 함께이기에 설레인다.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 근처 타운

그렇게 도로 위를 2-3시간 달리다보면 조슈아 트리가 간간히 보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 같은 길을 달린다. 예술혼이 넘치는 가게들, 무미건조한 슈퍼마켓, 그리고 무심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선인장을 발견하면 그 때부터 목적지에 가까이 온 것을 실감한다.

네모네모나게 생긴 핑크색 슈퍼마켓
거대한 선인장 세 그루(?)

여기서부터 다른 즐거운 일이 시작되었다. [미션] 바람을 느끼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멋쟁이 라이더를 포착하기! 라이더과 최대한 비슷한 속도로 달리며 찍는 것이 관건이다.

부릉부릉

캘리포니아, 그 중에서도 조슈아 트리와 잘 어울리는 라이더라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걸친 나시에 까만 헬멧, 빨간 스쿠터. 무심하게 기른 하얀 수염도 한몫한다.

 

어느 소설가가 그랬던가 - 하루종일 지하철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보며 각각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상상하면 좋은 영감이 된다고. 가끔은 나도 그런 상상을 한다.

'저 라이더의 이름은 제이콥, 짧게는 잭. 아틀란타에서 태어났지만 바닷가에서 자유로운 예술가들과 살고 싶어 캘리포니아, 정확히는 LA로 넘어왔다. 그러나 상상과 달리 텅 빈 것 같은 할리우드에 질려버린 그는, 진짜 예술가가 있는 곳을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결국 정착한 곳은 조슈아트리. 그는 이 곳 다운 타운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 식당에서 쉐프로 일하며 동네 예술가에게 데낄라 샷을 사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상상. 음, 누군가는 날 보고 어떤 상상을 할까.

 

캠핑장에서의 모험

주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 도착하자 반가운 조슈아 트리가 즐비하다. 어딘가 뒤틀린 것만 같은 이 나무들은 생긴 것도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뒤틀린 모양이 마치 선지자가 사막에서 고난 당하는 모습 같았던 건지, 조슈아(여호수아)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에게는 서로 다르게 생긴 괴팍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 자유롭다고 느껴졌다.

점보락을 탐사하기 전, 먼저 텐트를 쳐야겠다. 여름에 늘어진 해 덕분에 해 지기 전 여유롭게 캠핑 텐트를 친다. 

 

텐트를 다 세우고 나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쯤 그 캠핑장의 진짜 주인을 하나 만났다. 불청객인 우리를 미심쩍게 쳐다보더니 슬며시 옆으로 다가왔다.

타닥탁탁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게 딱 피터레빗이었다.
잘 가!

텐트도 완성했으니 주변 탐사를 떠나볼까?

 

해질 무렵의 주황 빛깔

새로 단장한 도로도 구경하고, 돌 위에도 올라서보고 뜸하게 지나가는 차들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봤다. 그새 해질 무렵이 되어 오렌지 빛이 나무와 도로, 우리의 몸을 감쌌다.

찍는 것마다 적신 것처럼 노을이 묻어져 나온다. 그늘이 닿지 않는 곳엔 하나 같이 노랗고 따듯한 빛이 가득 찼다. 따갑지도 않고 아직 쌀쌀하지도 않은 빛에 대지와 하늘이 나를 품어주는 것 같았다. 서로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댔다. 피사체가 되는 것도 피사체로 만드는 것도 즐겁다.

나의 친구 앨리스는 애인이 찍어주는 사진이 가장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들의 시선이 녹아들어 그들이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포착해낸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시선보다도, 내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사진이 나오는 거라고 되받아쳤다. 날것의 나를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할 때에야 그만큼 나답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찍히는 거라고. 

 

다가오는 밤

더욱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별이 가득 찬 하늘을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해가 지고 뜨는 시간,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을 계산해서 알맞은 날을 골라야 한다. 달이 일찍 떠오르는 걸 피할 수 없다면 달빛이 가장 적은 그믐달에 가까운 날을 고른다. 

 

달이 늦게 진다면, 달이 지는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한껏 부푼 기대를 가지고 어둠이 짙게 내려와 별들을 더 밝혀줄 도화지가 되기를 기다렸다.

동시에 불을 지피고 핫도그와 그릴드 치즈를 만들 준비를 했다. 애를 써봤건만, 이번에도 핫도그는 실패했다. 불이 닿은 쪽은 뜨겁고 닿지 않은 쪽은 차가운 반반도그가 탄생했다. 저번에는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아 차가운 소세지와 빵을 울며 겨자먹기로 먹으며 허기를 달랬으니, 반이라도 따뜻한 이번이 나은 편이다. 스탠은 장난기 서린 얼굴로 핫도그가 완벽하게 만들어질 때까지 꼭 자주 캠핑을 오자고 말했다. 어쩐지 핫도그를 완벽하게 굽는 법을 언제까지고 모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도 기다렸다, 은하수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졌다.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 경이로움, 신비함의 감정이 몰아쳤다.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구나 별빛은. 

 

별로 점을 치던 과거의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런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저 하늘 위에 펼쳐진 반짝이는 불빛이 경이롭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이 순간을 놓칠세라 목이 아플 때까지 끊임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날의 은하수

이제는 카메라에 담을 차례. 

 

은하수를 찍는 과정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해와 달빛, 도시의 불빛도 고려해 여기까지 달려와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야속하건만, 카메라에 담기에는 아직도 별빛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서 노출 시간을 높여 최대한 많은 빛을 담아내어야 한다. 적당히 긴 노출 시간을 골라, 별들이 움직여 버리는 바람에 별들이 선처럼 길어지는 것도 피해야 한다. 

 

그래서, 은하수를 찍을 때면 한 장 한 장을 찍을 때마다 15-20초의 시간이 걸린다. 자리를 잡고, 셔터를 누르고 15초 동안 기다려서 확인하고, 또 세팅을 한다. 

 

천천히 한 장 한 장을 확인하는 게 마치 옛날 필름카메라를 사용해, 필름을 찍고 현상하기까지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카메라에 담고 싶어 오랜시간 공을 들이는 게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흔들리지 않도록,, 여러 단계에 걸쳐서 심사숙고해야 하나의 멋진 사진이 나오는 것이다.

그날의 광경

그러던 중 무심코 바라본 스탠은, 마치 자신조차 움직이면 사진이 흔들리는 불상사가 날 것처럼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서터를 누르고 조리개가 열려 있는 15초 동안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며 별들을 눈에 담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바라보는 별들과 풍경이 카메라에도 담기기를 염원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별을 보며 감상에 젖었던 걸까.

 

이제는 돌아갈 시간

돌아갈 시간.

아침이 밝았다. 텐트를 정리하고 어제 남은 치즈를 먹고, 페트병에 담긴 물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떠날 때가 되었다. 

6월 중반이라 그런지 7월 4일인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국기가 오토바이 뒤에 꽂혀있다

내년 여름에는 별똥별 시즌에 와야지라고 다짐하며 다시 헌팅턴 비치로 돌아왔다. 물론 사진도 몇 장 더 찍고.

빨간 짚차와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한 벤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annabanana/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