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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왜 노란 리본이?

banana-adventure 2024. 7. 2. 15:00

근 방문한 바르셀로나는 노란 리본이 가득했다. 광장과 대로, 아파트나 성당 등 곳곳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걸려있던 리본들. 이 먼 타국에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건 아닐테지만, 시청에서 시위가 한창 열렸던 그 날들의 뜨거웠던 감정이 생각나, 그 노란 리본들을 그저 그냥 시위겠거니 하고 스쳐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갑자기, 전에 와서는 보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의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버가 금지되면서 택시 보이콧이 일어나고, 곳곳에는 정치적 운동의 일환으로 노란 리본이 걸려있으며, 관광객보다도 난민을 환영한다는 이 나라. 믿기지 않겠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 관광객으로서 여행지의 표면으로 그 공간을 쉽게 읽어내곤 한다. 방심하고 있던 내게 바르셀로나가 잠깐 보여준, 생각지 못한 속내를 잠깐 들여다보자. 타파스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의 감칠맛과 가우디 건축물이 주는 독특한 웅장함에만 매료되어 멀어버린 눈을 살살 비비고 나서.

 
마치 개떼같이 서있는 사람들을 잘라낸 구엘 공원의 사진(왼)이나,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모습은 담지 않은 카사바뜨요 사진(오)처럼

택시를 보이콧하는 사람들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마지막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묻자, 그녀는 내게 억울함을 토로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자신은 택시를 보이콧하고 있어서 택시를 불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원하면 우버 운전사를 불러주겠다며 가격은 22유로라고 말해줬다. 올 때 택시 비용이 32유로였으니, 2/3 수준으로 저렴한 셈이다. 하지만 우버는 바르셀로나에서는 금지되었을텐데?

"택시 파업으로 내 친구는 실업자가 되었어요. 우버 운전사였거든요. 그는 정말이지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에요. 원하면 그를 불러줄 순 있어요! 우버는 금지되었으니 현금으로 요금을 내시면 돼요. 택시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요. 우버보다 비싼 데다가 불친절하던 돌아가던 도대체가 피드백을 할 수조차 없어요. 택시기사들은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양 불친절하게 굴고, 또 어이없는 시위를 하고... 그래서 정말 미안하지만 택시는 불러주지 못할 것 같아요."

 

택시와 라이드쉐어링 서비스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보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3월부터, 바르셀로나에서는 라이드쉐어링(ride sharing) 서비스인 우버(Uber), 케비파이(Cabify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쓰이는 라이드쉐어 서비스) 사용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곧, 택시 측에서 결정을 반대하며 과격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며 문제가 생겼다. 우버 운전사들을 폭행한다던가, 차를 부순다던가 혹은 거리에 무단으로 택시를 세워놓고 파업을 벌인다던가. 

 

이 택시 기사들은 의회 사람들을 협박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협상의 카드는 인질이 되어버린 MWC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년 2월 MWC라는 큰 모바일 컨퍼런스가 열린다. 나 역시 MWC에 참가하기 위해서 바르셀로나에 방문하던 차였다. 

 

MWC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모두가 알 정도로 규모가 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주요 요인중에 하나인 행사인데, 만약 택시가 파업을 하고 있으면 어떨까? 트래픽이 꽉 막히고, 아무도 택시를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리면 행사 전체는 아수라장이 될 게 분명하다. 

MWC는 이미 100,000명이 넘는 인원을 도시에 불러오는 것만으로도 아수라장을 초래하고 있다

테크계의 많은 비지니스 관련 사람들이 모인 행사가 이번에 영향을 받아 행사를 망친다고 해보자. 그리고 다음해에는 바르셀로나가 안정적이지 않다며 다른 곳에서 열린다면?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까? 의회는 그렇게 저울질을 하다가 올해 1월부터 우버와 케비파이를 금지시켜버렸다. 그렇게 우버/케비파이 운전자들은 실업자가 되어버렸고, 저렴하고 친절한 우버 서비스를 응원하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또 택시를 보이콧하고 있다. 

 

누가 옳은지를 가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라이드쉐어링 서비스를 평생 금지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용자 입장에서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으니.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란 리본이 곳곳에.

대로변 건물 대문 위에 노란 리본들이 달려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게 노란 리본은 가슴 시린 안타까움과 분노가 느껴지는, 세월호 사건의 상징이다. 여전히 지하철에 가면 심심치 않게 가방에 작은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놀랍게도, 이 노란 리본들이 바르셀로나에도 가득했다. 관광지부터, 성당, 큰 건물들 벽 한켠엔 노란 리본 심볼과 함께 현수막이 걸렸다. 주거지에도 테라스에는 심심치 않게 노란 리본 현수막이 걸렸다. 

스페인에서 노란 리본은 어떤 의미인 걸까? 검색해보니, 까딸루냐 지방의 독립 운동과 얽혀있는 정치적 운동의 일환이었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까딸루냐 지방은 독특한 역사를 안고 있다. 까딸루냐어를 쓰고 고유 지방 음식도 독특한 등 까딸루냐만의 색채가 정말 강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페인 리그가 왜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로 나뉘고 서로 적대적인지에 대해 한 번쯤 궁금해봤을 법도 한데, FC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 지방인 바르셀로나를 연고지로 하여 까딸루냐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출처:축구를 좋아하는 한 친구에게 스페인에서 재밌었던 일이 있었다며 까딸루냐 지방에 대해 얘기해줬더니 들려준 이야기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이 까딸루냐 지방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쳐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까딸루냐 지방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독립하는 지역이 까딸루냐어를 사용하는 전체 까딸루냐 지방을 제외한 일부 부유한 까딸루냐 지역이라, 민족성에 기반한 독립운동이라기보다 세금을 가난한 다른 지역에 쓰는 게 싫다는 땡깡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스페인 정부는 몇년전 이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까딸루냐 지방의 정치인들을 국익에 반한다며 수감시켜버렸다. 

www.aljazeera.com/news/2018/11/spain-prosecutor-seeks-25-years-jail-catalan-leaders-181102135049400

본론으로 돌아가면, 노란 리본은 그렇게 갇혀버린 까딸루냐 지방의 정치적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정치적 운동의 상징이다. 정치적 수감자는 발언의 자유를 막는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보는 것이다. 유럽의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스페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이기는 하다. 세계 어느 곳이든 정치적 갈등이 없는 곳은 없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정치 시스템이 당연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수감자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점차 변형되지 않을까?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어디에?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귀울이자 여러 종류의 언어가 들렸다. 영국 엑센트의 영어, 딱 캘리포니아에서 왔겠다 싶은 서부 미국 영어, 이탈리아어, 불어, 독일어 등등. 근데 요상하게도 스페인어가 그닥 들리지는 않았다. 가게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길거리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보이질 않는다.

관광객으로 가득 차버린 보케리아 시장

바르셀로나는 인구 160만의 작은 항구 도시이다. 서울이 977만이니 비교하자면 서울의 1/6배 정도인 셈이다. 그에 비해, 일년에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놀랍게도 3200만. 실 도시 인구수의 20배가 넘는다. 아,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20명중 겨우 1명만이 이 도시에서 계속 살고있는 사람이라는 거 아냐?

 

이 도시는 사실 관광객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진통을 겪고 있는 곳 중 하나다. 유럽에서는 베네치아, 프라하가 유사하게 고통받고 있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 관광지화된다는 의미의 Touristify와 거주민들이 상업화로 임대료 등이 오르면서 밀려난다는 의미의 Gentrification이 합쳐진 합성어. 우리나라에서는 북촌 한옥마을, 이화동 벽화마을, 연남동 등이 있다. 
가판대는 물과 과자 한 두가지와 그 외 자리를 꽉 채운 기념품들로 채워져있다

맛집과 검색이 취미인터라 유명한 맛집들을 열심히 검색해서 갔더란다. 타파스가 유명한 한 집은 줄이 늘어서버렸고, 또 다른 미슐랭 집도 이미 두세달치 예약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한 유명한 브런치집은 기어이 줄을 서서 들어갔는데 아 내 앞 사람들도 캘리포니아 사람들, 내 뒷 사람들도 캘리포니아 사람들. 꼭 엘에이 근처 살 것 같은 전형적인 20-30대 힙스터들이 30프로, 그 외 외국인들이 한 40프로로 식당을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도 캘리포니아 비건 친구에게 추천받아서 간 집이었으니 뭐 말 다했지.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찾아보기 참 어려웠다. 맛이야 있었지만, 또 가격은 비쌌고. 

중심가에서 떨어진 숙소 근처 풍경

검색 맛집들이 과도하게 사람들로 북적이고 비싸다는 건 중심가에서 떨어진 숙소 근처에 작은 식당에 갔을 때 알게 되었다. 식당의 테이블은 겨우 반이나 차 있었을까? 그래도 다들 바르셀로나 거주민들로 보였다. 당연히 서버분은 영어를 하지 못하셨고. 하지만 곧, 우리는 기존 식당 가격의 절반 가격으로 가장 맛있는 피자와 파스타를 영접했다! 

 

이 후에도 바르셀로나에 며칠 더 머물러서 그런지 곧 현지 식당과 관광용 식당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텅 빈 쪽이 가격, 맛에서 훌륭하고 말이지. 그렇지만 수입측면에서는 어떨까? 현지 식당은 관광객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임대료에 치여 내쫒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관광객을 적대시하는 마음이 한켠으로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원래 즐기던 맛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은 이미 두 배 가격에 줄을 한시간 서야 들어갈 수 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장을 보려니, 구경만 하는 관광객 때문에 입장 사람 수를 제한해야 겨우 다닐 수 있다. 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 공원도 전처럼 마음놓고 항상 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는 못하다. 생계와 관련지어서 말하자면, 임대료와 물가는 치솟고 대중 교통도 그전보다 북적인다. 그냥 여러모로 도시에서 '살아'가기에는 점점 더 열악해지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에게 관광객과 관광사업은 마치 필요악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사는 골목에 걸린 빨래들

한편으로, 난민들을 보는 시각은 관광객에게 보내는 따가운 눈총과는 반대이다. 잠시 머물며 떠나가는 관광객들과 달리 같이 도시에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오히려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이유에서다. 

 

나라도 바르셀로나 주민이었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속가능한, 도시와 상생하는 여행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은 참 길고도 묘하다. 더 이상 꿈과 같은 낭만의 도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쩐지 속마음을 나눈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도시를 위해서는 당분간 방문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지만.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annabanana/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