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드러내버린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한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 이런 글이라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주제를 마주하게 되어 묘한 기분이랄까. 자, 먼저 날계란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산마테오 다운타운에서 날계란 맞은 썰
이 때(3월초)만 해도,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란 우스갯소리밖에는 안되는 존재였다.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독감이라는 식으로 별거 아니라고 말했고, NBA 농구선수인 Rudy Gobert는 장난식으로 마이크와 책상을 손으로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때마침 나는 샌프란 근처로 출장을 와있었다. 여전히, 길거리의 사람들은 마스크는 커녕 조금의 경계심도 없어보였다. 그 당시 그들이 경계했던 것은 중국 식당이 전부였던 것 같다.
현재 캘리포니아 남쪽인 Irvine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재택근무를 하는데, 가끔씩샌프란 근처 오피스로 가기 위해 출장을 가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퍼진 뒤,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장을 간 것은 아님을 밝힌다.
출장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했다. 트럼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Rudy Gobert를 비롯한 여러 농구선수가 코로나에 걸려 NBA 경기 전체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하루 하루 길거리가 한산해졌고 나 역시 급히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샌프란 오피스 역시 급히 재택 근무에 돌입한 차였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조금 더 한산해진 도심과 간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씨가 마치 세계 종말 직전처럼 느껴졌다. 나는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뉴욕 도심에서 한인 여성이 영문없이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고 폭행을 당해 턱 관절이 나갔다는 뉴스를 읽었다. 숙소 근처 식당에 들어가 테이크아웃 주문을 하는데 직원은 내 카드로 결제하길 살짝 꺼려하는 눈치였다. 그 직원이 내 카드를 집어들자, 카운터 바로 옆 바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은 나를 흘겨보며 그렇게 아무 카드나 받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직원에게 말했다. 그 때부터 그날은 불안했던 것 같다. 길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그들과 나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멀어졌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숙소에 돌아와서 조금 더 일을 하다가보니 벌써 10시반. 11시에 근처 마트 문이 닫기 전에 급히 물을 사러 나왔다. 분명 어제도 들렀던 마트인데, 이제는 직원들이 마스크과 장갑을 끼고 손세정제를 박박 문대고 있었다.
그렇게 물과 간식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지나가던 차에서 뭔가가 내 바로 옆으로 둔탁하게 떨어졌다.
"탁!"
깨진 갈색 껍질과 함께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날계란이었다.
길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으니 나를 저격한 것이 분명했다. 계란 한 판을 산 걸까? 돌아다니며 동양인에게 던질까? 아니면 내가 동양인 여자라서 던졌나? 걷고 있어서? 차에 타고 있지 않으니, 쫒아가지도 해코지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오늘 밤, 몇 명의 사람들이 이 계란을 맞을까?
아까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한인 여성을 폭행하면서 그 폭행범들은 뭐라 말했던가, 코로나 바이러스라 말하지 않았나. 처음으로 내 피부색에 대한 혐오와 위협을 느꼈다.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느꼈다. 뒤늦게 뒤를 돌아 그 차에 소리쳤다. "FUCK OFF!"
이내 씩씩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자 훨씬 더 커다란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나는 그 차가 돌아올까봐 주위를 계속 살피며 거의 뛰어가듯 재빠르게 걸었다. 나는 꼭 온갖 죄를 저지른 마녀처럼, 그림자에 숨어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 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나는 스탠과 전화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항에 가는 것도, 하루 더 이 곳에서 지내는 것도 너무 불안하다고.
한 친구는 샌프란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마스크를 왜 쓰지 않았냐고 소리쳤다고 했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는데, 역정을 들은 건 동양인인 그녀 뿐이었다.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 자신이 나고 자라온 고향에서 이방인 취급 받는다는 건.
유럽에서도 길거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라며 동양인을 비꼬고 동양인만 보면 기침을 하고 가는 둥, 인종차별 사례가 늘었다. 유럽에 거주하고 있던 많은 교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도 인종차별성 폭행을 걱정하여 한국에 속속들이 들어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사실 캘리포니아는 동양인이 많고 또 인종차별에 민감하여 hate crime을 엄중히 처벌하기에 이 사례가 더 충격적이다.
사설이지만, 중국에서 한국, 이탈리아 및 유럽 등지로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는 동안, 중국식당과 한국식당은 한산하기 그지 없었고 미디어는 중국의 식습관과 공산주의를 비웃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게는 #prayforitaly (이탈리아를 위해 기도하자)와 같은 해쉬태그와 온갖 위로가 쏟아졌다. 당연히도 이탈리아 식당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와 같은 패턴은 세계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무언의 차별적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벽 3시가 되자, 격앙된 감정이 조금 수그러들고 그대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왜 이들은 내게 날계란을 던졌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을까? 이틀 전만 해도, 마스크는 쓰지도 않던 사람들 아닌가? 왜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주 급작스럽게 아포칼립스처럼 변해버린 걸까? 인종차별을 죄악시 하는 이 다양성(Diversity)의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동양인 혐오가 시작된 걸까?
물과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사람들
그 다음날, 스탠은 6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나를 데리러 왔고 우리 둘은 그렇게 다시 6시간에 걸쳐 어바인으로 돌아왔다. 내려오는 6시간동안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얘기했다 - 물과 화장지에 대해서도.
미국에서는 패닉 바잉(panic buying)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안해진 사람들은 코스트코에 가서 물과 화장지를 잔뜩 사서 쟁여두기 시작했다. 한동안 코스트코 앞에는 몇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요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밀가루, 쌀, 캔 음식들도 식료품점에서 다 사라졌다.
아니, 왜 하필이면 화장지와 물일까? 그것도 5리터짜리 물통은 있고, 500ml짜리 물병만 사가는 심리는 뭐지? 마스크도 아니고, 화장지가 어떻게 필수품일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화장지도 꼭 필요한 물품이라 친다 한더라도, 몇년은 거뜬히 쓸만한 양을 사갈 합리적인 이유는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패닉바잉은 패닉하지 않은 이들까지 필요없는 화장지를 구매하도록 집단 패닉을 일으키고, 또 사회적 거리를 무시한 채 식료품 줄을 서느라 코로나 진원지가 될 것만 같은 카오스를 남겼다.
또 한켠에서는 총기 구매가 3배가량 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이쯤되면 미국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좀비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
트럼프와 닮아있는 미국인들
한동안 정말 미스테리와도 같았던 의문이 있었다 - 도대체 왜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뽑았을까?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그 의문을 해결해줬다. 동양인에게 계란을 던지고, 물과 화장지, 총기를 잔뜩 구매하는 미국인들의 행동은 이 나라의 대통령과 닮아있다.
정식 명칭인 COVID19를 사용하길 거부하고 계속해서 중국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언급하는 트럼프
트럼프는 코로나가 독감과 같은 바이러스라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 한편에서는 민주당이 괜히 코로나를 들먹이며 있지도 않은 공포를 조성하는 건 아니냐는 투의 말까지도 했었던 사람이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해변 등을 돌아다니는 무감각한 미국인들과 겹쳐보인다.
뉴욕에서 바이러스 전염이 심각해지자마자, 트럼프는 태세를 전환하였다. 국가위기상황을 선포하고는 자신이 전시상황의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마치 영웅처럼, 전국민 자가격리 조치를 내리고 테스트와 치료를 전부 무료로 지원해주겠다는 허언으로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애를 썼다.
실제로는 양성 반응이 나온 경우에 한해서 테스트만 무료이고, 치료 등은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대통령의 허언 덕에 백악관에서는 오류 정정 발표를 해야만 했다.
테스트와 백신에 대한 얘기보다는, 잔뜩 돈을 풀어 경제 불황을 막겠다는 이야기만 한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 해결보다는 단편적인 증상에 더 관심을 보인다. 경제가 곤두박칠칠까 두려워 돈을 연달아 푼 탓에 전문가들은 후에 인플레이션이 올 것을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전에 마스크 제작, 병원 지원, 테스트 지원에 예산을 충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3월 28일자로, 미국은 전세계에서 중국을 제치고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1위가 되었다. 하루에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확진자로 판정받고 있다. 원인해결보다는 자신의 한치 앞 안보만 생각하고 물과 화장지, 총기를 샀던 패닉바잉과 다를 바가 없다.
트럼프의 그 다음 스탭은 이 사태를 책임질 희생양을 찾아 물어뜯고 혐오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라 언급했고, 백악관에서 바이러스를 쿵플루(Kung Flu; 쿵푸와 플루를 합친 합성어)라고 언급했다는 제보가 들려왔다. 중국발 입국자는 2월1일부터 입국금지 조치했면서, 이제와서 중국에서 유입되었다는 식으로 중국을 탓하고 근거없는 동양인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이제까지 충분히 예측 및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함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도 없다. 이미 지역 감염이 시작된 마당에 인종, 바이러스의 진원지 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과 똑 닮은 무지한 지지자들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려 아시아인들에게 덮어씌우려는 정도의 눈가리고 아웅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가장 치명적일 것이다 - 50대 이상의 고위험군인, 가장 크게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보수주의 백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던(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 우선주의인 트럼프가, 국가적 재난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이후의 트럼프 지지자층은 어떤 관점과 랜드스케잎으로 변하게 될까.
미국 건국에서부터 이어지는 공포에 대한 감각
미국의 집단적인 공포(fear)와 편집증(paranoia)는 사실 미국 건국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미국의 어두운 저면이기도 하다. 미국 건국, 총기 소지 합법, 911 테러 대처, 공화주의자(republican)의 토대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개개인의 공포와, 공포가 몰아가는 극단적 이기주의적 태도가 묻어있다.
Bowling for Columbine (2002) - A Brief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Scene (8/11)
미국의 시초는 영국의 박해를 못이겨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필그림들이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은 시초부터 자신들의 국가인 영국에서 벗어나고자 탈출했던 자들이다. 미국의 가장 큰 가치인 자유는, 사실은 국가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국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자유,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자유는 그대로 총기 소지의 자유로도 이어진다. 미국 공화주의자들이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도 또 어마무시한 국방 예산을 쓰는 대립적인 정책 방향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또 미국은 특이하게도 영토내에서 전쟁의 기억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나마 전쟁에 견줄만한 집단적인 트라우마의 역사가 있다면 그건 바로 911테러일 것이다. 911테러 이후에 미국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언제 테러에 당할지 모른다는 감각은 총기 소지만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을테다. 그렇게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목적 아래에, 그 공포는 무고한 중동계 이민자들에게 돌아갔다. 많은 중동계 이민자들이 불합리한 감시를 받았고 일상생활에서부터 생계와 연결된 기회 등에서 크게 차별받았다.
911테러 이후, 중동계 사람들만 보면 식겁하고 도망가던 모습은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진 이후에 그대로 동양인을 보고 바이러스 취급하며 자리를 피하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과 패닉 바잉은 말하자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굉장한 위협과 공포로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그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미국 사회에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미국인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리도 민감해진 것은 왜일까? 본질적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회적 안전망이 굉장히 얕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미국 사회는 호황이었다 - 떨어질 줄 모르는 주식 가격, 최저 실업률은 모든 이들의 기분을 누그러뜨려줬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깊숙히 미국 사회의 아픈 곳을 찔렀다. 보편적 의료 보험의 부재,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사회 구조, 그리고 보호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권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전역에 퍼지면서 내 머릿속 역시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 아, 내가 여기서 감염되면 테스트나 해볼 수 있는걸까? 또 치료비는 어떻게 충당하지? 구급차만 불러도 500만원을 청구하는 이 나라에서 보험이 얼마나 커버해줄 수 있을까?
지금은 무료로 테스트를 진행한다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테스트는 전액 자기 부담이었고 그 금액은 보험 없이 400만원, 보험 처리시 200만원이었다. 그렇다, 나처럼 보험이 있는 사람도 200만원을 내고 테스트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16만원이라던데, 그 마저도 양성이면 무료로 해주고. 누군가는 16만원이 비싸다는 기사를 썼지만 내게는 그마저도 꽤 싸고 좋은 복지로 느껴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디에서 테스트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3월초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증상이 보이는 환자가 있어도 진단키트부족과 진단 검사 승인을 내려주지 않는 정부 때문에 검사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미국은 가장 최첨단의 의료 기술을 가진 나라이지만 또 동시에 가장 의료의 문턱이 높은 나라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이 나라의 가장 밑단의 사람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미국을 뒷받쳐주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불법이주노동자들이다. 미국의 서비스업 대부분에, 그리고 많이들 꺼려할 만한 고위험저임금 직종에는 불법이주노동자들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기도 하다 - 가장 빈번하게 외부인과 노출하고, 의료보험도 신분증도 없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진단 검사가 의미가 있을까? 나라면 검사하다가 이 나라에서 쫒겨날 가능성, 감당하지 못할 치료비 걱정을 하다가 '그냥 콱 걸려서 죽고 말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런 공포와 불투명성은 미국에서 지역 감염을 확산시키는 원인이지 않을까?
나는 비교적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지만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현재 나는 영주권 진행을 하고 있고 합법적 체류를 하고 있다. 최근에 영주권 진행 단계 중 하나인 신체검사를 진행했는데 이 신체검사는 말하자면 미국에 병을 옮기지 말라는 의미에서 치뤄지는 검사이다. 성병, 결핵, 파상풍, 독감 등을 앓고 있거나 혹은 백신을 맞았는지 검사한다. 만약 내가 지금 상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그리고 그게 밝혀진다면 나의 영주권 진행은 얼마나 미뤄질까? 거부당하는 건 아닐까? 와 같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국 사회는 서비스업 비중이 굉장히 높은 나라이다. 많은 이들의 직장이 서비스업에 달려있기 때문에, 사회적 접촉을 줄여야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명적이기 그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선제대응을 하지 못한 미국은 하루 아침에 모두 자가격리 조치를 하게 되었고, 많은 식당과 바는 강제로 문을 닫게 되었다.
장기화되는 상황에 따라 실업율은 치솟았다. 곧 뉴스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고, 서비스업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 역시 실업 공포에 떨게 되었다.
미국의 노동법에 의거하면, 고용자는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든 사직이 가능하며 또 고용주 역시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든 예고없이 고용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 근로법은 실업률이 낮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쉬운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실업률이 높아지는 경제적 불황에서는 치명적으로 작동한다. 또한, 고용주는 유급휴가와 휴일을 지급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휴일 휴가 없이 일하는 것 역시 불법은 아니다. 최저시급도 꼭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연방 최저시급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주마다 노동법과 최저시급이 다르고 몇몇 주는 아예 최저시급을 설정하지 않았다.
사설이지만, 휴일 휴가 지급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일하는 미국인들이 대선선거날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선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열악한 노동법과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는 사람들이 더 크게 공포를 느끼고 비이상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트럼프가 경제 불황을 막아보려고 천문학적인 액수를 경제에 쏟아붓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나마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치켜세웠던 건 경제적 호황과 낮은 실업률이 한 몫 했으니.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싼 의료비와 노동법은 많은 미국인들을 사회적 안전망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다. 그리고 떨어진 사람들은 바이러스 전파자로, 혹은 실업자가 되어 의료적/경제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The worst is yet to come)"의 공포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여러 방면에서 많은 이들이 가장자리에 선(on the edge) 기분일 것이다. 나이 많은 고위험군들부터, 서비스업 종사자들, 불법이민자들, 혹은 투자받기 힘들어진 사업가들까지.
이번 봄은 여름이 다 가고 나서야나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확실한 공포에 잠식되거나 관계없는 타인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기보단, 상황을 직시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모두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지길.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