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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놀라운 기술 혁신은, 따릉이와 빨래방에 있었다

banana-adventure 2024. 7. 2. 09:43

첨단 기술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최신의 기술과 혁신을 접한다고 했지만 과연 나의 삶에서는 어떨까. 그 최신의 기술은 나의 삶에도 혁신을 가져왔을까 - 나의 일상에서 가장 크게 영향력이 있었던 기술 혁신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스타트업과 심지어 요새는 대기업들도 혁신, 그러니까 'Game Changer'를 외친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꾸는 Game Changer는 최첨단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기술로 어떤 문제를 푸는지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닳디 닳게 쓰이는 별 것 아닌 기술이 지금, 나와 당신의 삶에서는 가장 큰 혁신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에게는 그게 따릉이(라임바이크)와 빨래방이었다.


라임바이크, 보자마자 반했어

이번 해 6월말, 출장 겸 방문했던 캘리포니아에서 동네를 걸어다니다가 신기한 풍경을 발견했다. 회사 근처에도, 숙소 근처에도, 가게 앞에도, 딱히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곳들에 서로 똑같이 생긴 라임색 자전거가 놓여져 있는 게 아닌가? 자전거 락도 없고, 주인도 없어보이는 이 라임 자전거는 뭐지?

이름도 색깔도 라임 바이크

궁금했던 나머지 나는 자전거에 다가갔고, 자전거에 써있는 인스트럭션을 읽어보고는 어떨지 너무 궁금해서 홀린듯이 라임바이크 앱을 다운 받아버렸다. 게다가, 첫 라이드는 무료라니 손해도 아니잖아? 원래 걸어가려 했던 다운타운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20분 안에 지금 휙 갈 수 있고.

라임바이크, 한 번 타볼까?

라임 바이크 사용법은 간단했다. 앱을 깔고, 앱에서 자신의 위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전거로 다가간다. 그리고 앱에서 QR코드를 스캔하거나, 그 밑에 지정고유번호를 입력하면 자전거의 락이 자동으로 풀린다. 그리고 타고 싶은 만큼 쭈욱 타면 끝! 타고나서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자전거 락을 걸면, 걸린 시간에 대비하여 비용이 지불된다. 라임바이크의 매력에 빠진 나는, 결국 일주일 출장 동안 5일이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더란다.

 
 
1) 자전거 위치를 확인하고 2) QR코드를 스캔한 뒤 자전거를 타고나면 3) 어디서 어디까지 얼마나 탔는지 알려준다

 

미국에 라임바이크가 있다면, 한국엔 따릉이가 있다

라임바이크와 같은 공유 자전거 서비스는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출장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온 나는 처음으로 따릉이를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라임바이크랑 비슷하게 하는 것 같던데, 어떻게 하는 거더라?" 그렇게 라임바이크처럼 따릉이도 초여름부터 열심히 타고 다녔다.

아무데나 놔두고 아무데서나 픽업이 가능했던 라임바이크에 비해서는, 편의성은 떨어졌지만 아무렴 어떤가. 정차할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고, 앱이 직관적이지 않은 건 아직은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지금 25년 평생 살던 동네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보고 있으니까. 자전거로 동네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따릉이는, 내 삶에서 커피를 물리치고 가장 가치 있는 1,000원 소비 아이템이 되었다.

 

겨우 GPS를 사용한 것 뿐인걸

내 자전거가 없이도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곳곳을 돌아다니게 해준 이 혁신적인 자전거 공유 서비스는 GPS기술을 사용하여 가능해졌다. 겨우 GPS를 사용한 것 가지고 뭘 그리 혁신이라 호들갑이냐고?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GPS가 등장한게 1970년대, 일반대중에게 사용이 허용된 게 1980년대, 지도 등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우리 모두가 쓰기 시작한 게 2000년 쯔음이니, 벌써 대략 20년 조금 안되게 우리와 가장 가까운 기술이 아닌가.

 

20년 넘은 기술로도 혁신은 가능하다

그런데도 따릉이는 그 어떤 기술보다도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나와 같이 그들의 일상인 자전거가 GPS와 융합되어, 매일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그리고 이 자전거는, 그 어떤 놀라웠던 기술보다도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의미있게 바꾸고 있다. 특히나, 캘리포니아에서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차가 없이는 어디든 잘 갈 수가 없었는데, 이걸 라임바이크가 한 순간에 바꾼 것이다.

 

따릉이가 혁신적인 이유는 단지  GPS 를 접목시키는 것만으로, 자전거를 소유할 때의 단점은 싹 빼고 장점만 붙여다 놓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은 다들 이미 알 것이다. 건강에 좋고, 환경 친화적이며, 대중교통 대신 이용하여 딱히 트래픽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요새  PT 나 필라테스 수업이 1회에 5만원 상당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자전거는 정말이지 좋은 대안처럼 들린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길게 봤을 때는 정말 좋은 딜이 아닌가!

 

하지만 자기 소유의 자전거를 이용하다보면 기회비용이 참 많다. 초기비용도 많이 들고, 비싸면 비싼대로 도난위험도 있고 또 타이어, 휠 등 관리비용도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언덕이 많아, 동네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도 하다. 나처럼 언덕 위에 사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리집은 빌라라서 엘레베이터가 없어 4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매일 자전거를 가지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또 밑에 놔두자니 자전거 거치대가 없어 불안하다. 그 뿐인가, 자전거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는 카페, 식당으로 끌고다니는 것도 일이고 혹여나 너무 멀어 지하철, 버스를 타고 싶으면 사람들의 눈총을 잔뜩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자전거는 매일 감당하기는 힘든 짐이 되는 것이다.

 

따릉이는 그 불필요한 과정을 싹 잘라버린다. 나의 하루를 예시로 볼까?

빌라와 언덕을 내려와 봉천역에서 따릉이를 빌린다. 비용은 천원 혹은 이천원. 한달권을 끊으면 더 저렴하다. 심지어 1년권을 끊어도 삼만원으로, 자전거 구매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제 봉천역에서부터 낙성대까지 20분정도를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이동한다. 낙성대 따릉이 정거장에 따릉이를 주차하고 근처 까페를 가벼운 걸음으로 간다. 자전거 락을 들고 다닐 일도, 자전거 거치대를 찾아 헤메일 일도 없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즐겁게 놀고는, 즉흥적으로 한강을 가기로 한다. 나와 친구는 버스를 타고 세빛둥둥섬으로 향한다. 거기서 다시 우린 따릉이를 빌리고, 동작대교를 넘어 여의도 한강공원까지 쭈욱 자전거를 타고 간다. 자, 그리고는 여의도역 근처 정류소를 찾아 자전거를 반납한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자전거를 끌고 다닐 일도, 돌아올 때도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일도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유 경제 모델, 따릉이

또 하나, 내가 이 따릉이를 혁신으로 꼽은 이유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유 경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유 경제 모델의 비지니스로 다들 알고 있을 만한 회사는 아마 에어비엔비와 우버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에어비엔비와 우버는 더 이상 공유경제에 기반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던 서비스를 대체하는 정도로 변하고 있다. 에어비엔비는 호텔 및 숙박업체를, 우버는 택시를. 그러다보니, 시장과 가치 창출보다는 자리 뺏기 싸움에 머물고 있다. 에어비엔비는 더이상 남는 방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개인 단위의 숙박 업체가 되어가고 있다. 운영만을 위하여 집을 구매하여 도시에서의 집값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혹은 우버에서는, 풀타임 우버 드라이버가 생겨나 또다른 택시의 수단처럼 사용되어 택시 운전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한 우버 드라이버는 전직 택시기사셨는데, 우버가 생기며 택시 수입이 너무 낮아져서 어쩔 수 없이 택시만 있었던 기존보다 적게 버는 우버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뜯어다보면, 자동차 유지비, 기름값 등의 다른 기회비용을 따져봤을 때 풀타임 우버 드라이버의 시급은 최저시급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여 어딘가 착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따릉이는 어떻게 뜯어봐도 환경친화적이고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는 데에만 기여하는 순수한 형태의 공유 경제 모델인 것 같다. 사람들이 자전거가 없이도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굳이 다른 이의 노력 없이도 알아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버와 에어비엔비는 분명 더 편리한 서비스이지만, 나에게는 숙박시설과 택시를 대체한 서비스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따릉이는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자전거 대중교통수단화'를 가능하게 해준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이지 않을까?

 

게임 체인저는 결국 사람들이 환호하고 매일 사용하며 자신들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순간에 있는 것이다. 봉천의 높은 언덕 언저리에 살고 있어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기 힘든 내가 봉천에서 낙성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홀가분하게 커피를 마시고, 또 돌아올 때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따릉이가 내 삶을 바꾼 게 아니라면 무엇이 내 삶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빨래방에서는 어떤 혁신이?

따릉이는 접어두고 또 다른 사례를 한 번 보자. 빨래방 이야기를 하기 위해 미국의 빨래방(laundromat) 문화를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미국, 특히 미국의 도심은 빨래방의 수요가 많은 곳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단위의 가구수가 많고 또 집안 내에 세탁기가 있는 게 당연한 문화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일찍이 독립한 1인가구가 많아서 아파트 사정에 따라 세탁기를 놓을 수 없도록 하는 곳도 있고, 가난하여 개인 세탁기를 구매할 여력이 없는 경우에도 빨래방을 이용한다. 스튜디오 등이 대부분인 아파트 단지, 학교 기숙사 등에는 공용 세탁기가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여러모로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보기가 굉장히 쉬운 곳임에 틀림없다.

이 공용 세탁기/건조기들은 동전으로만 지불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그렇다. 신용카드가 이렇게 발달한 지금에도, 세탁기에는 25센트를 긁어모아서 넣어야 빨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의 세탁기 사용료는 3.50불, 건조기 사용료는 4.50불. 총 8불이니, 25센트로 따지자면 32개나 된다.

사족: 나와 내 남자친구는 이 25센트를 모으려고 일부러 20달러를 은행에서 뽑아서 맥도날드에 가 아이스크림콘을 사먹고 남는 센트를 모으기도 했었다. 혹여나 1달러가 있으면 잘 모았다가 몰래 세차장 같은 데서 동전 변환기를 사용해야 하기도 했다. 지금도 현금을 하나도 들고 다니지 않는 나에게는 빨래를 위해 현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25센트가 딱 하나 모자랐을 때는, 절망에 빠져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를 넣어보기도 했다. 물론 실패했지만.

 

그래서 준비했어, 앱 결제 세탁기

그러던 올해 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파트의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가, 후에는 근처 빨래방들이 점점 앱 결제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이다. 세탁기 앱을 깔고 카드를 등록하면 온라인 결제를 하듯이, 결제가 된다. 더 이상의 동전은 필요가 없다. 유레카! 더 이상 빨래를 미룰 필요도, 두 번 나눠서 돌리지 않으려고 흰 옷이든 컬러 옷이든 다 구겨넣고 찬물에만 빨 필요도 없어졌다.

앱으로 세탁기 사용을 결제를 하고나서,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다. 곤히 잠이 들어 넉넉히 두 시간 좀 안 되게 자고 있을 때쯤, 핸드폰 진동이 울려 잠이 잠깐 깼다. 알람은 세탁 앱에서 빨래가 다 되었다고 알려주는 메세지였다. 잊고 있던 빨래가 다 되었다는 소식에, 흥이 나서 집을 나서서 공용 세탁기로 향했다. 그 전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체크하는 걸 놓치는 바람에 빨래가 끝나기도 전에 몇 번이고 세탁기 앞까지 내려갔다 와야 했던가. 또 언젠가는 세탁기를 돌려놓고 잊어버려 꿉꿉한 냄새가 나도록 찾지 않는 바람에 한동안 옷에서 묘하게 찝찝한 냄새가 나기도 했더란다. 혹여나 멀리 있는 빨래방에 가면 누가 훔쳐갈까, 혹은 누구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떠나지 못하고 앉아있었던 적도 있지 않은가.
아파트 단지내에 있던 공용 코인 세탁기. 'Pay with your phone' 이라는 문구가 붙기 시작했다.

 

세탁기 업계에선 당연한 게 아니야

GPS 기술과 마찬가지로, 앱결제도 그리 어려운 신기술은 아니다. 요새 앱결제가 안되는 게 어디 있나? 요새는 택시, 음식배달, 온라인쇼핑, 이젠 스타벅스 커피까지 앱으로 결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앱결제 공용 세탁기가 대단하게 느껴진 이유가 있다.

 

상업용으로 쓰이는 세탁기 업체는 미국에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몇몇 회사가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몇몇 회사가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고장이 잘 안나고 튼튼하기 때문. 그러니까, 아무리 다른 업체가 앱결제니 카드결제니 서비스를 만들어도, 빨래방 주인들은 고장이 잘 안 나는 세탁기를 버리고 굳이 그 업체를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뿐이랴, 이런 코인 세탁기는 대여 기간도 길다. 한 모델을 빌리면 10-15년의 계약을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아무리 신형으로 새 카드결제 세탁기가 나와도, 모든 세탁기를 신형으로 바꾸는 데까지는 10-15년의 주기가 걸리는 것이다. 특히 도시에 부가 몰려 세탁기와 건조기를 집에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계층이 많아지면서 빨래방의 수요가 점점 떨어지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이런 변화는 부창출에는 무의미한 노력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카드 결제 기기가 세탁기랑 별도로 설치할 수 있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인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어떻게든 써야할 사람은 쓰는 빨래방인데, 무엇하러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매출을 위해 값비싼 카드결제 하드웨어를 세탁기와 건조기마다 설치하겠는가?

 

빨래방, 자판기, 버스/지하철표 판매기, 길거리 주차비까지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동전과 지폐를 써야만 하는 곳들이 있다. 코인 세탁기가 나에게 가장 밀접한 예시였다면, 차를 가진 사람에게는 길거리 주차가 그렇다. 주차요금을 내는 기계는 대부분 동전으로만 지불할 수 있어 많은 차에는 쿼터만 꼭 모아놓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자판기도 마찬가지다. 오래되고 관리가 잘 안되는 자판기일수록,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자판기이기 때문에 굳이 카드 결제 하드웨어를 달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요즘 들어, 이 모든 곳에서 앱 결제가 가능해졌다.

나는 갑자기 앱 결제가 등장한 이유가 너무 궁금해 갖가지 추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혹시, 세탁기 회사에서 드디어 기술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 "아니면, 이제 동전이 너무 쓰이지 않다보니 동전을 더이상 제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코인 기기들도 사라지는 걸까?" "아, 불법자금이 현금으로 들어오면 으례 하는 말처럼 '돈세탁'을 위해서 현금만 쓰이는 빨래방을 이용하기도 했다던데 이제 미국에서 그런 일은 많이 사라지다보니 그냥 시대를 따라 카드도 받아주는 걸까?" ... 지금 생각해보니 엉뚱하면서도 말은 되는 망상이었군.  

이유를 찾기 위해 열심히 구글링도 했건만, 의외로 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세탁기에 붙어있던 ' pay with your phone'  공고와 함께 다운받았던 앱. 그 앱을 살펴보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세탁기에도 건조기에도 사용가능했던 앱 'PayRange'

이 앱은 위에서 말한 모든 곳, 즉 카드 결제를 위한 하드웨어를 달기에는 비용 대비 수익이 안 나와서 동전을 사용해야만 결제할 수 있었던 곳들에서 앱 결제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아이디어는 심플하다. 결제를 가능하게 하려면 무선 연결을 통해 복잡한 보안절차와 카드사의 승인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결제 하드웨어의 비용이 높아진다. 근데, 생각해보니 요새는 다 그 복잡한 절차를 돌릴 수 있는 값비싼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더란다. 바로 우리의 스마트폰.

 
 
 Pay Range  앱 이미지. 앱 자체  UI는 여타 앱 결제 앱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그러니, 결제와 관련된 인터넷 연결은 스마트폰에서 하고, 기기에는 아주 간단한 신호 장치만 설치한다. 작동할까 말까와 같은 신호말이다. 핸드폰에서 결제가 끝나면, 기기는 "작동해!" 라는 1차원적이고 단순한 신호를 받고 작동을 시작한다. 자판기나 주차요금기와 같은 다른 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한가지 신호만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달면 앱 결제가 가능해진다! 값비싼 하드웨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기술력의 향상이 아닌 발상의 전환

이 혁신은 더 이상 쿼터 동전을 모으지 않아도 되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벌써 엄청난 게임 체인저이지만, 그보다 큰 혁신적인 요소는 결제와 관련된 메커니즘의 발상을 전환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기존 비용대비수익이 낮아 어떤 빨래방도 감히 카드 결제 하드웨어를 설치할 수 없었던 데에 비해, PayRange의 앱 결제는 결제와 관련된 계산을 모조리 사용자의 스마트폰 컴퓨팅파워로 돌려버렸다. 결과적으로는, 딱히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보완하지 않고도 하드웨어의 비용을 확연히 낮춰 어디에서나 앱 결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코인 세탁기, 주차요금기, 자판기를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단지 쿼터 하나가 없어 이용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단번에 해결해버렸다!

 

이렇게 또 한번 혁신은 최첨단의 기술력보다도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있는 것 같다. 앱 결제, 카드 결제가 당연시되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한 건  IoT 기술의 발달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라는 게 꽤나 흥미롭다. 어떻게하면 코인 세탁기에서도 코인이 아닌 수단으로 결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누군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거의 모든 서비스에서 앱 결제가 가능하도록  효율높은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낸 셈이니 말이다.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쿼터 동전 모으기에서 해방시켰는지는 두말 할 것 없고.

 


다시금, 기술과 혁신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여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임을 곱씹게 된다.

 

Note:

이 글은 브런치에서 티스토리로 옮겨온 글입니다.

https://brunch.co.kr/@jannabanana/17